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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밤의 어두움이 지배한 대지에 눈이 무심하게 내려 덮이고 있었다. 눈들은 인간의 손길이 오래 전에 사라져 무너지고 바스러지는 건물들의 폐허와, 페인트가 살껍데기 벗겨지는 꼴로 녹슬어 가고 있는 수많은 자동차들의 위로 가만히 쌓여갔다.  

 

바람의 기운은 전혀 없는 채로, 

그저 눈이 쌓이는 작디작은 소리들만이 가득 채워진 조용한 공기.

그 속을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목 정도까지 짧게 드리운 은발을 적갈색의 망토에 달린 후드로 가린 남자였다. 망토로는 한 아이를 돌돌 감아 잘 껴안고 있었다. 아이를 망토로 말고 보호하느라, 허리춤에 차고 있는 꽤 오래되고 낡아보이는 갈색 벨트와 거기에 매달린 갈색 잡낭들이 보였다. 생긴 것들이 마치 프랑스 혁명 쯤의 시대에서 병사들이나 쓰고 있던 물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잡초들이 군데군데 부숴뜨린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걷는 남자의 입에서는 입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입은 연신 작은 입김을 뿜어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는 추위는 상관없다는 듯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은발의 남자가 원래는 차갑기만 한 자신의 피를 따뜻하게 만들어 몸에 돌리면서 온기로 아이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코에는 연신 뿜어대는 아이의 입김으로부터 올라오는 젖비린내가 어느새 가득차 있었다. 

 

얼마나 걷고 있던 것일까. 이윽고 그의 눈앞 저 너머에,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성문 같은 출입구조차 없어, 그 안의 사람들이 영원히 갇혀있도록 만들어진 벽. 어림잡아도 10여 층 건물 높이의 벽 안쪽은, 61번 섹터라 불리는 곳이었다. 뱀파이어들의 지배가 시작된 이후, 인간들은 자신의 터전을 떠나 모든 기계의 혜택으로부터 떨어진 채 이런 섹터라는 곳들에 강제로 옮겨졌다. 그리고 대부분 섹터의 지배권은 전부 뱀파이어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 61번 섹터만은 달랐다. 이 대륙의 수많은 섹터들 중 유일하게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이 섹터장을 맡고 있는 곳. 

 

그 높은 벽의 위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남자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은발의 남자는 신호탄을 꺼내 발화시켜 신호를 보냈고,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밧줄을 내려주었다. 손으로 밧줄을 당겨보아서 고정된 걸 확인한 은발의 남자는 망토를 포대기처럼 만들어 아이를 등에 매고, 밧줄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힘을 들이는 것 같지도 않게, 남자는 빠른 움직임으로 그 높이를 올라갔다. 

 

은발의 남자가 성벽 위로 올라오자 밧줄을 내려준, 검은 턱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만약 지금 이 곳에서 그 남자를 본 섹터 안의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 시각에 그 턱수염의 남자가 거기 있는 것을 의아해 할 것이었다. 

 

그는 이 61번 섹터의 섹터장, 로이드 프리드먼이기에. 

 

"고생하셨습니다."

"그럴만한 것은 없었소."

 

은발의 남자는 로이드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등에서 떼어놓았고, 로이드는 아이를 안아들고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건......좀 의외로군요. 동양계 같은데."

"그렇소."

 

로이드는 입을 완전히 다물고 아이만 바라보았다. 성벽을 오르느라 흔들렸던 그 와중에도 아이는 꿀잠에서 깨지 않았다. 사박사박 눈이 쌓여가는 소리가 가득찬 속에서 두 사람은 아이가 눈에 맞지 않도록 아이의 윗쪽을 몸을 숙여 가린 채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잊었다. 아이를 데려온 은발의 남자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불안함과 착잡함, 아이를 안아 들고 있는 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작은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기쁨. 그런 것들이 말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항상 비밀이 우선입니다."

 

이윽고 은발의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누가 물어보면 뭐라고 할 것인지 말해보시오."

"주워왔다고 할 겁니다. 야간 시찰 도중에."

 

은발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속의 불안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눈치였다.  

 

"절대로, 이 아이를 여기서 나가게 하지 마시오. 이 아이는 죽어도 여기에서 죽어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괜찮소. 말해보시오."

"어째서.......이 아이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것입니까?"

 

로이드는 은발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은발 남자의 얼굴은 미처 억누르지 못한 감정들이 일시에 드러나 있고,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 했다. 겨우 로이드가 느낄 수 있는 건, 무언가 더 무거운 진실들에 짓눌리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느라 힘겨워 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은발남자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그 분의 뜻이, 그러했소."

 

로이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은발의 남자는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가벼운 예로 고개를 짧게 숙여보이고는, 다시 성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은발 남자의 모습이 바닥에 닿아 저 너머의 어두움과 설경의 지평선에 삼켜질 때까지 로이드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의 신뢰는 무거웠고, 자신은 그 신뢰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 무게 따위는, 이 아이를 로이드 자신과 아내 레이첼이 키울 수 있다는 기쁜 사실에 비하면 깃털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가벼웠다. 품의 아이가 목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자, 로이드는 그 아이를 어르듯 두어번 흔들고는 통로를 통해 벽의 아래로 내려갔다.

 

은발의 남자는 왔던 길을 되돌아 황도 브리디아로 걸음을 향했다. 

 

가는 길에, 그는 자신이 안고온 아이가 지고 있는 운명의 무게를 가늠했다. 원칙적으로는 태어날수도 없는 존재. 또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존재. 그는 그 작은 아이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오래된 전설을 떠올렸다. 

 

뱀파이어들의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뱀파이어의 몸을 빌려 태어난다는 존재, 

 

'카르마나'에 대하여. 

 

태생만으로도 불길한 아이였지만, 자신은 그에 대해 지금은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충성하는 사람이, 그 아이를 살려두라 하였기에. 

 

아니, 그녀에게 그것은 어쩌면, 명령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감정을 쥐어짜낸 힘겨운 부탁이었을 지도 몰랐다. 슬픔과 괴로움을 억지로 눌러두는 와중에 비어져 나온, 작게나마 읊조렸던 그 목소리. 사랑이란 걸 했던 존재로서,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잊으려 하고 있던 자의 마지막 부탁.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동족 전체의 피를 죽음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은발의 남자는 소망하고 있었다. 그 불길한 현실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녀의 부탁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기를. 그 아이가 그 61섹터 안에서 계속 자라고, 평온하게 제 수명을 다해 늙어죽을 수 있기를. 만약 그렇지 않고, 이 세상과 여왕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면, 그 때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만든 이 세상을 위해서, 

 

아이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니까. 

 

우울한 다짐을 하며 은발의 남자가 눈길을 헤쳐가는 동안, 로이드는 관저로 돌아가 레이첼과 함께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몸을 가진 레이첼의 눈도 기쁨과 경이로 가득차 있었다.

 

침대의 위에서 아이는 어느새 잠을 깨고는 검은 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들을 반짝이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도 아직 맞추지 못할 것 같은 눈이 두 사람을 뚜렷이 바라보는 듯 했고, 우에에 하는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꼬물대는 아이의 몸짓에 두 사람은 입꼬리가 벌어진 채 조그만 손과 발을 연신 가볍게 매만지고 있었다.  

 

아이가 지닌 불길함은 그 따스한 풍경 속에서 녹아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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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크와 동시연재합니다. 

무료 작품 쪽에 있구요, 태그는 판타지, 뱀파이어, 흡혈귀 등으로 찾으시면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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